[이데일리](전편에 이어서) 1994년 11월 9일 종합지수가 1,145P까지 치솟았다가 그 후 5개월간에 걸쳐 계속 하락했다. 드디어 1995년 4월 13일 종합지수가 890P까지 내려갔다.
그러자 견디다 못한 투자자들이 데모를 한다는 소리가 들렸다. 4월 14일 오후에 명동의 소위 증권빌딩 2층에 있는 대유증권 객장에서 있다고 했다.
요즈음은 그런 모습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주가가 크게 떨어진다 싶으면 정부에 대해 증시부양책을 촉구하는 시위가 흔히 있었다.
대유증권의 객장에 가보니까 전광시세판이 꺼져 있는 상태에서 이제 막 구호를 외치려던 참이었다. 잠시 후 머리에 흰 띠를 두른 투자자들 두 명이 앞에 나가서 증시부양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자 앉아 있던 투자자들도 따라서 손을 들고 외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객장 한쪽에서는 부양책을 촉구하는 서명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언제 어떻게 연락을 받았는지 방송국 카메라를 든 기자들과 신문기자들이 들이닥쳐 시위장면을 촬영하고 취재하는 것이었다.
나는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기자들이 달려올 수 있을까. 그것도 데모가 시작된 지 불과 5분도 채 되기 전에 말이다.
이 의문은 잠시 뒤에 풀렸다. 그때 내 옆에 있던 몇몇 사람들의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친구들 또 하는구먼. 오늘 일당은 얼마씩 받았지?” “이때다. 빨리 주식 사야 돼.”
나는 시위가 끝난 후 이 사람들에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았다. 이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일부 큰손들이 주가가 크게 떨어지고 일반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즈음에 미리 주식을 사둔 뒤 몇몇 투자자들을 고용하여 일당을 주고 부양책 촉구 데모를 하게 한다는 것이었다.
오늘 데모를 주동한 사람들이 전에도 했던 사람들이라고 했다. 그리고 데모 시작 시간을 미리 방송국이나 신문사에 연락해 주면 기자들이 곧바로 뛰어온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문이나 방송에 보도되면 지방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일어나고, 그러면 정부에서는 이런저런 부양책을 검토 중이라거나 호재성 재료를 발표하게 된다. 설령 정부에서 부양책을 쓰지 않더라도 일반투자자들은 투자자 시위가 있게 되면 뭔가 부양책이 나오겠지 하고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이렇게 해서 주가가 반등할 때에 시위를 주동했던 큰손들은 팔고 나간다는 것이다.
"다음편에서 계속...'
* 이데일리ON 김동조 소장의 칼럼은 시리즈로 연재되고 있습니다. 칼럼 더보기 [클릭] * 김동조 소장의 “주식홀로서기 파워분석법” 입문편(무료방송)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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